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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성전기'(second temple period)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부터(주전 6-5세기)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까지를 유대교의 ‘제2 성전기’라고 말한다. (1) 첫 번째 성전은 주전 10세기에 지어진 솔로몬 성전이며, 바벨론의 침략으로 주전 6세기경에 파괴되었다. (2) 두 번째 성전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재건하였다(에스라와 느헤미야). (3) 세 번째 성전은 예수님이 태어날 무렵에 건축중이던 헤롯대왕의 성전을 말한다. 이 성전은 주전 19년에 준공하여 주후 64년에 완공되었지만, 주후 70년의 유대 전쟁 중에 다시 파괴되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전 5세기부터 주후 1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제2 성전기 유대교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제2 성전기 유대주의의 다섯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ONE TRUE GOD (한 분 참 하나님)

제2 성전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종교적 특징은 한 분 참 하나님, 여호와(Yahweh)만이 계시다는 믿음이었다. 이 유일신 사상은 오늘날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지만, 고대 시대에 그런 믿음을 고수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암송했던 일종의 유대인의 신조인 쉐마(Shema)는 이 유일신 사상이 잘 나타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이 유일신 신앙은 필연적으로 우상 숭배를 강하게 거부하는 삶의 태도를 요구한다. 동시에 유일신 사상의 결과로 특정 민족의 신들과 다른 민족의 신들을 동일시하는 혼합주의를 거부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고대 세계에서는 혼합주의가 정복민들의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전형적인 수단이었던 것이다. 주전 3세기 헬라 장군 알렉산더 대왕과 주후 1세기 로마는 둘 다 이런 정책을 사용했다. 먼저 정복한 후 자신들의 신을 정복민들의 신들과 일치시킨 것이다. 주전 167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hiphanes)가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Zeus)상을 세울 때 그의 이런 조치는 지극이 논리적인 수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일신 신앙을 강하게 고수했던 유대인들은 이에 반발하였고, 이에 대한 결과로 안티오쿠스는 유대법 준수를 불법으로 선언, 마카비 반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어떻게 성경에 유대인들은 피정복민이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일까? 로마는 유대인들의 강력한 유일신 사상을 알게 되었고, 유대에서의 군사적인 반란을 피하고 싶었기에 그들의 신앙과 예배를 허용했던 것이다.이 유일신 사상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하나는 ‘창조'(Creation)이며 다른 하나는 ‘섭리'(Providence)이다.

1) 창조적 유일신론(Creational Monotheism)은 여호와가 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유대인들의 믿음을 말한다. 이 믿음은 1세기 당시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네 가지 견해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1. 단일신교(Henotheism): 이는 하나의 신만을 믿는 다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는 자신들의 나라의 신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신념. 이 믿음은 당시에는 보편적인 믿음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여호와만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모든 나라들이 자신들의 신을 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범신론(Pantheism): 신을 자연 질서와 동일시하는 사상. 신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이름일 뿐이다. 이 믿음에 따르면 피조 세계를 경배하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피조 세상과는 별개로 분리되어 있는 존재다.
  3. 에피쿠로스(Epicureanism): 신들은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고 믿는다. 현대의 이신론(Deism)과 비슷한 신관. 결국 기도, 예배, 희생 제사는 무의미한 것이다. 창조는 우연, 세상의 일들은 원자들의 이동에 따른 법칙에서 비롯된다고 믿음. 하지만 유대인들이 믿는 창조주는 세상에 긴밀하게 관여하시며 유지하는 분이다(사 40:26; 시 65:9-13; 135:6-7).
  4. 이교주의(Paganism): 이 우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들이 살고 있으며 각 신들의 각자의 주관하는 영역들이 있다고 믿음. 헬라와 로마의 만신전은 이와 같은 많은 신들을 모식 있음. 이 신들은 굉장히 변덕스러운 것이 특징이며, 그들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에 신들을 어떻게 달래는 방법을 찾기위해 애씀. 하지만 유대인들의 여호와는 온 우주의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2) 섭리적 유일신론(Providential Monotheism)은 한 분 참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믿음을 말한다. 야훼 하나님이 우주의 참된 통치자이시며 자신의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다는 것이다(시 10:6; 22:28; 93:1; 96:10). 따라서 모든 나라와 제국의 흥망이 그분에게 있으며, 이 세계 안에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루시려고 일하신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상엔 악이 만역하는가? 여호와는 그런 일에 관해서는 무력하신 분이신가? 아니면 그런 악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이신가? 유대인들은 이 두 가능성을 모두 거부하고, 그 대신 유대교 믿음의 두 번째 주요 특징인 ‘선택’을 주장한다.

 

2. GOD HAS CHOSEN ISRAEL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

‘선택'(election)이란 우주의 창조주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했으며 언약을 통해서 오직 자기들에게만 전념하신다는 믿음이다. 바로 이것이 유대교가 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신구약 저자들은 악이 어디에 기원했는가보다 하나님이 악에 대해 어떻게 행하고 계시는가에 주목한다. 즉, 하나님은 악을 진멸하기를 원하신다. 바로 그 진멸의 수단이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세 가지 약속'(후손, 땅, 복)을 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가 단지 그 나라 자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빛이 되어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께 반응할 수 있게 하려고 부르셨다는 것이다(사 42:6; 49:6; 51:4).

이스라엘의 절기들을 보면 이에 대한 믿음의 반응들이 잘 나타나는데, 그들의 절기는 하나님의 ‘구속'(redemp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그들은 매년 절기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어떻게 구속하셨는지를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자신들의 운명을 환기시켰던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환상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예언에서 극명히 나타나는데, 그들은 열방이 예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산으로 하나님을 뵙기 위해 몰려들 것을 묘사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슥 8:20-23).

 

3. GOD HAS PROVIDED A WAY TO LIVE (생명의 길을 주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으며, 율법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백성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하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신 7:7-11)로 간주한다. 이것은 십계명 서론에서부터 잘 나타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롸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2-3).

애굽에서 구원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보다 이전의 사건이다. 즉 계명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 준수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성원임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지이며, 심지어 유일한 표지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토라가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와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 시절의 예배는 성전 의식보다는 토라 읽기와 기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 유대인 성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유대인의 예배에 율법이 중심이 되었으며(느 8장), 이것이 회당 제도로 발전한다. 회당은 성경 읽기와 기도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여기서 세 가지 율법이 특별히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누가 한 분 참 하나님께 속했는지를 보여주는 ‘경계표'(boundary marker)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 할례: 유대인이라는 표시를 몸에 남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창 17:9-14). 안티오쿠스가 주전 167년에 할례를 불법으로 선언한 것(1 Macc. 1:60-61)은 유대교의 특수성을 직접 공격한 것임.
  2. 안식일: 창조의 명령으로서(창 2:2-3) 십계명의 명령(출 20:8-11). 마카비 반란 중에 한 신실한 유대인 그룹은 안식일에 자신을 방어하기를 거부하여 결국 모두 죽음을 당하기도 함(1 Macc. 1:31-38).
  3. 음식법: 율법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코쉐르(kosher) 고기만 먹어야 했다(레 11:1-23; 신 14:3-21). 유대인들은 비유대인들과 음식먹기를 거부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먹고 있는 고기가 코쉐르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음식법 준수를 불법으로 선언하여 열심 있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자초한 것도 이 때문이다(1 Macc. 1:62-63).

마카비 시대 이후 유대인들은 마카비 시대의 헌신적인 율법 준수를 통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이방인으로부터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반란을 처음 주도했던 맛다디아(Mattathias)도 ‘율법을 향한 열심'(Zeal for the law)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으며, 반란의 핵심 유대인 지도자였던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us)도 자신의 군대가 전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율법을 수호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유대인들의 율법 준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했다. (1) 하나님이 로마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때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남아 있기 위해서. (2) 토라의 독특성(할례, 안식을, 음식법)을 유지하여 이방의 통치기에 유대교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결국 예수님 시대에 율법은 유대교의 그야말로 핵심 가운데 핵심이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바로 여기서 소위 ‘새관점'[New Perspective]이라고 불리는 현대 바울 신학의 가장 뜨거웠던 이슈가 나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4. GOD HAS GIVEN THE PEOPLE A LAND, FOCUSED IN THE TEMPLE (자기 백성에게 성전을 중심으로 한 땅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은 바로 땅의 약속이다(창 12:1; 15:18-21). 또한 이 언약은 출애굽 때에 모세를 통해 갱신되었다(출 3:8). 신명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신실하지 않을 경우 땅에서 쫓겨날 것이지만(신 28:64),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려주실 것이라는 약속이 기록되어 있다(신 30:1-5; 참조. 왕상 8:33-34). 유대인들은 주전 6세기 바벨론 포로와 50년 후의 귀환을 이 패러다임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 약속의 땅을 유대인들은 거룩한 곳으로 생각했으며, 율법의 요구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곧 그 땅을 더럽히는 것으로 여겼다. 또한 이방인들에 의해 땅이 통치받는 것 또한 그 땅이 더렵혀진 것으로 이해했다.

  1. 성전: 약속의 땅 안에는 특별한 도시 예루살렘이 위치해 있고, 그 안에는 진주처럼 여기는 성전이 있다.
  2. 절기들: 매년 세 번의 순례 절기(유월절, 오순절 혹은 칠칠절, 장막절 혹은 초막절)가 있었다. 이때 예루살렘을 찾아와 경배했으며 다른 절기들은 집에서 지켰다. 모든 유대인들이 모든 순례 절기를 지킨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적어도 1년에 한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신의 생에 한 번 예루살렘에 갈 계획을 세웠다. 가장 붐비던 때는 유월절로 평소 12만의 예루살렘 인구가 30만에서 50만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이다.

이렇게 성전을 중심으로한 절기들을 통해 유대교만의 독특한 종교의식이 확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전이 모든 유대인들의 중심은 아니었다. 에세네파와 같은 그룹들은 로마와 결탁한 대제사장과 성전의식들이 이미 부패하였기에 다시 순수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을 고대했다.

 

5. HOPE FOR THE FUTURE (미래에 대한 희망)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자기 땅에서 살아가지만 식민지 체제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동하실 날을 고대했다. 그들은 포로 귀환을 통해 이사야 40-66장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방의 통치 아래 있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바꾸시기를 원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미래에 대한 소망, 즉 종말론(eschatology)은 다섯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1.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약속의 땅을 회복하는 희망.
  2. 이방인들의 개종이나 복종, 혹은 멸망: 이것은 이스라엘이 밖으로 나가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을 전도한다는 뜻이기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 즉 시온으로 찾아오는 희망이었다.
  3. 새롭고 정결케 되는 갱신된 성전: 이방인들이 통치하는 더렵혀진 성전이 아닌 선지자들이 약속한 진정한 의미의 성전을 갈망.
  4. 정결한 예배: 이방인들에 의해 더렵혀진 예배를 정결케 할 소망. 나아가 전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
  5. 메시아 기대: 1세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백성을 구원할 인물을 보내실 것이라 기대. 이 인물은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의 ‘메시아’로 불렸다. 이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새로운 왕이었다. 대부분은 이 인물을 군사적 지도자로 생각했다. 어떤 이들은 메시아가 정결한 예배를 획복시킬 제사장적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바리새인 그룹에서는 토라를 참되게 해석해 줄 율법적이고 예언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기도 했다. 쿰란 공동체는 두 명의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하나는 제사장적 메시아고, 다른 하나는 예언자적 메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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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성전기 유대주의의 다섯가지 특징 - New Testament Theology 2013-01-20 22-4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