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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희생제사에 대한 연구 경향

참조: http://www.ntstory.com/sacrifice-in-the-ancient-mediterranean-recent-and-current-research-by-daniel-ullucci/

해당 주제와 관련해서는 본 소논문이 10페이지에 이르는 광범위한 참고문헌을 수록하고 있으니 참조하라.

지난 20년 동안의 지중해 연안의 “희생 제사”라는 연구 주제는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으며, 이러한 동향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희생제사에 대한 연구 방향을 이미 상당부분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고대 제사의식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보다 폭넓게 희생제사를 재상황화하고 있으며, 고대 지중해 연안의 종교 풍습에서 가장 중요한 희생제물이 가지는 중요성이 재고되고 있다.
  2. 희생 제물에 중점을 두고 연구했던 기존의 강조점이 약회되고 있으며, 동물의 희생 제물을 비동물의 제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기존의 경향을 거부한다.
  3. 희생제물이나 제의를 특정한 목적을 따라 제정된 신화로 보거나, 보편적인 의미/본질이 내포된 행위로 보는 관점에서 탈피하고 있다.
  4. 모든 희생제사를 보편적인 인류의 불안, 열망, 죄의식, 폭력적 경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던 일률적인 설명에서 벗어나고 있다.
  5. 희생제사와 과도한 폭력성을 서로 엮어서 설명하려고 했던 기존의 개념에서 벗어나 이 두 요소를 서로 분리시켜 보려고 한다.
  6. 문자적 증거와 고고학적 증거에 대한 통합적인 연구를  추구하고 있다.
  7. 고대 지중해 연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요소가 희생제사에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서로간의 경쟁적인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 사이에서 희생제사라는 것의 정의와 그것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및 범위가 당대에도 중요한 논쟁거리였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다.

 

Myunghoon

최근의 정경적 읽기의 두 경향(2000-2015)

  1. 첫 번째 방향은 정경이라는 물리적 실체 그 자체에 상당히 집착하는(hypermaterial) 경향인데, 이는 정경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정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와 융합시키려는 경향이다. 이 관점이 정경이 형성되고 배열되는 과정에서, 형이상학적인 무엇이 아닌 순수한 역사성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정경화를 발생시키고 유도한 어떤 초월적인 행위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띈다. 주로 성경신학 분과에서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2. 두 번째 방향은 정경을 일종의 비물리적 실체로 간주하는(nonmaterial) 경향인데, 이 경향은 정경적 “단일성”(혹은”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는 형태이다. 저자는 이 방향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정경의 가시적 특징에 대해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경의 단일성은 외부로부터, 특별히 신학적 응집성의 렌즈를 통해 발생되었다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주로 조직신학 분과에서 취하고 있는 입장이다.
Myunghoon

고린도전서 5장 해석

고린도전서 5장 본문에 대한 일반적인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 두 가지:

  1. γυνὴ τοῦ πατρός(“아버지의 아내”)라는 구절이 레위기 혹은 신명기의 규례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Hans Conzelmann, 1 Corinthians: A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trans. James L. Leitch, Hermeneia (Philadelphia: Fortress, 1975), 96 n. 25; Gordon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87), 200; Wolfgang Schrage, Der Erste Brief an die Korinther, 4 vols., EKKNT 7 (Zurich: Benziger, 1991–2001), 1:369; Richard B. Hays, First Corinthians, IBC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1997), 81; Craig S. de Vos, “Step-mothers, Concubines and the Case of ΠΟΡΝΕΙΑ in 1 Corinthians 5,” NTS 44 (1998): 104–14, here 105; Kathy L. Gaca, The Making of Fornication: Eros, Ethics, and Political Reform in Greek Philosophy and Early Christianity, HCS 40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141 n. 59, http://dx.doi.org/10.1525/california/9780520235991.001.0001; Alistair Scott May, The Body for the Lord: Sex and Identity in 1 Corinthians 5–7, JSNTSup 278 (London: T&T Clark, 2004), 64; Paul Hartog, “ ‘Not Even among Pagans’ (1 Cor 5:1): Paul and Seneca on Incest,” in The 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 Literature in Greco-Roman Context: Studies in Honor of David E. Aune, ed. John Fotopoulos, NovTSup 122 (Leiden: Brill, 2006), 49–62, here 51–52 n. 2; L. William Countryman, Dirt, Greed, and Sex: Sexual Ethics in the New Testament and Their Implications for Today, rev. ed. (Minneapolis: Fortress, 2007), 192; Boris A. Paschke, “Ambiguity in Paul’s References to Greco-Roman Sexual Ethics,” ETL 83 (2007): 169–92, here 173; Joseph A. Fitzmyer, 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AYB 32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08), 234; Roy E. Ciampa and Brian S. Rosner,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PilNTC (Grand Rapids: Eerdmans, 2010), 199; William Loader, The New Testament on Sexuality (Grand Rapids: Eerdmans, 2010), 161–63.
  2. 고대에 아들과 계모 사이의 성적관계는 곧 근친상관을 의미했다.
    Conzelmann, 1 Corinthians, 96; Fee, First Epistle, 194; Schrage, Der erste Brief, 1:368; Hays, First Corinthians, 81; Bruce W. Winter, After Paul Left Corinth: The Influence of Secular Ethics on Social Change (Grand Rapids: Eerdmans, 2001), 47–49; Gaca, Making of Fornication, 140; May, Body for the Lord, 64–65; Hartog, “Paul and Seneca,” 51; Countryman, Dirt, Greed, 192–96; Paschke, “Ambiguity in Paul’s References,” 182; Fitzmyer, First Corinthians, 234; Ciampa and Rosner,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197; Loader, New Testament on Sexuality, 161–63.
Myunghoon

몸의 부활(고전 15장)에 대한 해석의 역사와 최근의 논의

부활절을 맞이하여 몸의 부활(고전 15장)에 대한 사도 바울의 관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도표로 정리해 보았다.

Resurrection

내가 살펴 본 자료 중에서 고린도전서 15장의 몸에 부활에 대한 해석의 역사를 가장 간략/명쾌하게 설명한 아티클은 James Ware의 2014년 JBL 논문이다 (esp., pp. 810-17).

역사적으로 몸의 부활에 대한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물질적 부활: 이 견해는 초기 교부인 이레니우스와 어거스틴의 견해로 부활의 몸이 지상에서 입고 있던 육체의 몸이 불멸의 몸으로 변혁된다고 보는 견해이다 (Cf. Altermath, François. Du corps psychique au corps spirituel: Interprétation de 1 Cor. 15,35–49 par les auteurs chrétiens des quatre premiers siècles. BGBE 18; Tübingen: Mohr Siebeck, 1977]).
  2. 비물질적 부활: 이 견해는 소위 영지주의적 해석으로 몸의 부활을 문자 그대로 읽는 해석을 배격한다. 즉 부활 이후 인간은 물질이 철저히 배제된 영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Cf. Pagels, Elaine. “ ‘The Mystery of the Resurrection’: A Gnostic Reading of 1 Corinthians 15,” JBL 93 [1974]: 276–88).
  3. 천상 물질적 부활: 이 견해는 앞선 두 견해 사이에 위치한 중도적 견해로 3세기 오리겐에 의해 처음 주창되었다(Cf. Crouzel, Henri. “La doctrine origènienne du corps réssuscité,” BLE 31 [1980]: 175–200, 241–66.). 이 견해는 비록 몸의 부활은 말하지만, 그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지상에서의 육체가 아닌 천상의 물질로 구성된 하늘의 혹은 영적인 물질로 구성된 몸을 입게 된다는 견해이다.

개신교/천주교/동방정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첫 번째 견해이다. 두 번째 영지주의적 해석은 사실 역사적으로 큰 힘을 얻지 못했다. 문제는 세 번째 해석인데, 오리겐의 이 해석이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AD 553)에서 정죄된 이후로 자취를 감추는 듯 하다가, 현대에 들어선 1896년 이 견해가 Ernst Teichmann에 의해 다시 주창된다(Teichmann, Ernst. Die paulinischen Vorstellungen von Auferstehung und Gericht und ihre Beziehung zur jüdischen ApokalyptikerFreiburg: Mohr, 1896, 33–62.). 하지만 곧 슈바이처와 예레미아스에 의해 반박을 당한 후 이 주장은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육체의 부활에 대한 논쟁이 신약 학계에서 일어나게 된 시초가 된 책이 예일대 교수인 Dale Martin의 1995년 저작 The Corinthian Body이다(Martin, Dale B. The Corinthian Bod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5). Martin이 제기한 주장의 핵심은 1세기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몸과 영을 나누는 이분법이 오늘날 우리가 전제하는 데카르트적 이분법과 다르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 세계의 관점에서 ‘몸'(body) 뿐 아니라 ‘영'(spirit)도 물질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Martin의 뒤를 이어 이 논의를 활발하게 발전시키고 있는 학자는 Jeffrey R. Asher와 Troels Engberg-Pedersen이다. 이들의 저작은 아래와 같다.

  • Asher, Jeffrey R. Polarity and Change in 1 Corinthians 15: A Study of Metaphysics, Rhetoric, and Resurrection. Hermeneutische Untersuchungen zur Theologie 42. Tübingen: Mohr Siebeck, 2000.
  • ———. “Σπειρεται: Paul’s Anthropogenic Metaphor in 1 Corinthians 15:42-44.” JBL 120, no. 1 (2001): 101–22.
  • Engberg-Pedersen, Troels. “Complete and Incomplete Transformation in Paul—a Philosophical Reading of Paul on Body and Spirit.” Pages 179–97 in Metamorphoses: Resurrection, Body and Transformative Practices in Early Christianity. Edited by Turid Karlsen Seim and Jorunn Økland. Berlin & New York: De Gruyter, 2009.
  • ———. Cosmology and Self in the Apostle Paul: The Material Spiri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 ———. “The Material Spirit: Cosmology and Ethics in Paul.” NTS 55, no. 2 (2009): 179–97.

특별히 Engberg-Pedersen의 견해가 중요한데, 그는 스토익 철학 개념의 우주론이 고전 15장 몸의 부활장의 배경이 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사후세계에 대한 스토익적 관점은 육체를 떠나 프뉴마로 구성된 천상의 몸을 취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부활하게 될 때 인간은 지상에서의 몸이 변혁되는 것이 아니라, 천상의 물질로 구성된 프뉴마로 변혁된다고 보는 것(유대 묵시록적 요소+스토익 철학의 우주론적 요소)이 바로 바울이 생각했던 부활의 개념이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주제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앞서 제시된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살피되 특별히 Engberg-Pedersen을 main conversation parter로 삼아야 한다.

Comments: 잘 알려진 바대로 바울의 종말론은 그의 구원론, 기독록, 인간론, 윤리를 하나로 엮는 상당히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부활의 몸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소망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주도면밀하고 책임감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Myunghoon

고린도교회의 분열에 대한 해석의 역사

corinthians copy

최근의 경향은 아니지만, 고린도교회의 분열 문제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시대순으로 간략히 도표화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어 보았다.

F. C. Baur(1876)로부터 시작되는 근대 고린도서신 해석의 역사는 (1) 튀빙겐 학파의 해석이었던 베드로파와 바울파 사이의 갈등, (2) Schweitzer와 Dahl을 이은 Anthony C. Thiselton의 종말론적 해석, (3) Schmithals로부터 시작된 영지주의 해석, (4) 헬라적 유대주의 내의 지혜 전통으로 나뉜다. (5)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사회과학비평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거의 모든 주도권이 사회-경제적 분열 문제, 또 한편으로 수사학 전통이 고린도교회 문제의 원인이었다는 해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종교/신학적 원인에서 사회/문화적 요인을 핵심 문제로 보게되는 전환이 이뤄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각 해석들이 반드시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들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제반문제를 야기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해석 역사를 다룬 최고의 아티클은 Adams와 Horrell이 편집한 다음 책의 Introduction이다.

  • Adams, Edward and David G. Horrell, eds., Christianity at Corinth: The Quest for the Pauline Churc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4)

한국인 신학자 권오영 교수가 CBR에 게재한 논문도 고린도서신 해석 역사를 살펴보는데 아주 좋은 자료이다.

  • Kwon, Oh-Young. “A Critical Review of Recent Scholarship on the Pauline Opposition and the Nature of Its Wisdom (σοϕία) in 1 Corinthians 1-4.” CBR 8, no. 3 (2010): 386–427.
Myunghoon

신약성경과 메타포/시각적 이미지

2013년 JBL에 David Horrell이 기고한 아티클을 보면, 최근 신약 학자들이 초기 기독교 당대에 통용되던 시각적 이미지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생각나서 짧게 적어 본다. 해당 아티클: http://www.ntstory.com/visuality-vivid-description-and-the-message-of-1-peter-the-significance-of-the-roaring-lion-1-peter-58-by-david-g-horrell-bradley-arnold-and-travis-b-williams/

이번 Friesen의 고린도전서 4:9의 해석에 대한 아티클을 보면 비슷한 경향을 띈 논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아티클: http://www.ntstory.com/paulus-tragicus-staging-apostolic-adversity-in-first-corinthians-by-courtney-j-p-friesen/ 참고로 고전 4장 9절 본문에 대한 해석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자료를 참조하길 바란다.

  1. Nguyen, V Henry T. “God’s Execution of His Condemned Apostles: Paul’s Imagery of the Roman Arena in 1 Cor 4,9.” Zeitschrift Für Die Neutestamentliche Wissenschaft Und Die Kunde Der älteren Kirche 99, no. 1 (2008): 33–48.
  2. Nguyen, V. Henry T. “The Identification of Paul’s Spectacle of Death Metaphor in 1 Corinthians 4.9.” New Testament Studies 53, no. 04 (2007): 489–501.
  3. Welborn, Larry L. Paul, the Fool of Christ: A Study of 1 Corinthians 1-4 in the Comic-Philosophic Tradition.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Supplement series 293. London: T. & T. Clark, 2005.

Friesen의 아티클에는 Roman triumphal procession에 대한 해석학적 옵션을 누락시켰지만, Nguyen은 이에 대한 논의도 포함시키고 있다.

Comments: 신약성경을 읽다 보면 시각적인 이미지나 메타포로서의 역할을 하는 구절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예컨대, Horrell이 다룬 베드로전서 5:8 본문처럼, “우는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는 구절은 당대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을 처형했던 장면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접점을 찾는 연구를 위해서는 그리스-로마와 유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수고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Myunghoon

바울과 리더십(Leadership)

바울과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바울 서신에서 ‘재정'(finance)과 ‘권위'(authority)와 같은 주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주제지만, 구체적으로 이 문제는 초대 교회가 어떻게 조직화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관련이 있다. 학계에서는 1880년 이후부터 제기 된 소위 Holtzmann-Sohm 가설을 지금까지 받아들여 왔다. 이 주장은 바울이 세운 교회가 처음부터 일종의 ‘계급화된 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 주어진 ‘성령에 의해 운영 및 유지’되었다는 주장이다(소위 Charismatic consensus). 직분의 계급화 및 교회 조직은 그 이후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초기 학자들과 문헌은 다음과 같다.

  1. Holtzmann, Heinrich J. Die Passtoralbriefe Kritisch Und Exegetisch Behandelt. Leipzig: Wilhelm Engelmann, 1880.
  2. Sohm, Rudolf. Kirchenrecht I: Die Geschichtlichen Grundlagen. Leipzig: J. C. Henrich, 1892.
  3. Harnack, Adolf von. The Constitution and Law of the Church in the First Two Centuries. Translated by F. L. Pogson. London: Williams & Norgate, 1910.

이 주장이 힘을 얻게 된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F. C. Baur와 Walter Bauer의 영향
  2. 외경 연구의 발전과 맞물린 목회 서신의 저작 연대 문제
  3. Max Weber가 이 가설을 차용

이러한 주장은 1960년 이후 사회과학 비평이 출연한 후에도 계속 학계의 합의로 남아있었다. 핵심 학자들은, Wayne Meeks, John Schütz, Bangt Homberg, Margaret MacDonald 등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출판되는 논문들은 이 가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바울과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독립된 연구 분야로 설정하고 이끌었던 대표 학자는 에버딘 대학의 Andrew D. Clarke 교수다. 대표적인 저서는 다음과 같다.

  1. Clarke, Andrew D. A Pauline Theology of Church Leadership. The Library of New Testament Studies 362. London: T. & T. Clark, 2008.
  2. ———. Secular and Christian Leadership in Corinth: A Socio-Historical and Exegetical Study of 1 Corinthians 1-6. Arbeiten zur Geschichte des antiken Judentums und des Urchristentums 18. Leiden: Brill, 1993.
  3. ———. Serve the Community of the Church: Christians as Leaders and Ministers. Grand Rapids: Eerdmans, 2000.

비교적 최근에 이 주제로 출판된 논문은 Jack Barentsen의 Emerging Leadership in the Pauline Mission: A Social Identity Perspective on Local Leadership Development in Corinth and Ephesus. Princeton Theological Monograph Series 168. Eugene, OR: Pickwick, 2011 이다. Andrew Clarke의 연구가 social-description 접근에 가깝다면, Barentsen의 연구는 social-science 접근이며, Philip Esler가 주도하고 있는 사회학의 사회정체성 이론으로 초기 교회(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를 비교 연구했다.

가장 최근의 논문은 지난 11월에 출판된 Richard Last의 The Pauline Church and the Corinthian Ekklēsia: Greco-Roman Associations in Comparative Context. 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 Monograph Series 164.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5 이다.

Comments: 바울과 리더십, 초기 교회의 기독교에 대한 연구는 신약 학계에서도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에 적시성 있는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가정 교회, 가나안 현상, 교파와 직분 문제, 사역자의 권위와 사역 형태, 목사의 사례비와 교회의 재정 사용 등 다양한 주요 이슈들과 상당히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Myunghoon

본문비평 최근 연구 동향

본문비평의 최근 경향을 다룬 아티클에 대한 번역 포스팅: http://www.ntstory.com/sleepy-scribes-and-clever-critics-a-classification-of-conjectures-on-the-text-of-the-new-testament-by-bart-l-f-kamphuis-et-al/

본 아티클은 화란 암스테르담 대학의 프로젝트인 New Testament Conjectural Emendation: A Comprehensive Enquiry에서 나온 연구물이다. 저자들은 최근의 본문비평의 경향이 “원문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보다는, “본문의 역사적 전승 과정이 어떠한가”에 점점 더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최근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1. J.K. Elliott,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 The Application of Thoroughgoing Principles; Essays on Manuscripts and Textual Variation (NovTSup 137; Leiden: Brill, 2010) 8
  2. M.W. Holmes, “Text and Transmission in the Second Century,” in R.B. Stewart (ed.), The Reliability of the New Testament: Bart D. Ehrman and Daniel B. Wallace in Dialogue (Minneapolis: Fortress, 2011) 61-79 (67-68)
  3. U. Schmid, “Scribes and Variants: Sociology and Typology,” in Textual Variation: Theological and Social Tendencies? Papers from the Fifth Birmingham Colloquium on the Textual Criticicm of the New Testament (eds. H.A.G. Houghton and D.C. Parker; TS third series 6; Piscataway: Gorgias, 2008) 1-23 (23)
  4. B.D. Ehrman and M.W. Holmes (eds.), The Text of the New Testament in Contemporary Research: Essays on the Status Quaestionis (2nd ed.; NTTSD 42; Leiden: Brill, 2013)에 담긴 아티클, K. Haines-Eitzen, “The Social History of Early Christian Scribes” (479-495); M.W. Holmes, “From ‘Original Text’ to ‘Initial Text’: The Traditional Goal of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 in Contemporary Discussion” (637-688); B.D. Ehrman, “The Text as Window: New Testament Manuscripts and the Social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803-830). 5
  5. J.L.H. Krans, Beyond What is Written: Erasmus and Beza as Conjectural Critics of the New Testament (NTTS 35; Leiden: Brill, 2006)

이 아티클의 목적은 전승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수정이 어떤 “문제”와 “원인”들에 의해 발생했는지 범주화시키는 것이다.

Comments: 이러한 학계의 경향이 발생하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기존의 연구의 영역이 일단 어느정도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 Bart Ehrman이 이러한 흐름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그는 현대의 본문이 필사자들에 의해서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고 본다. Ehrman은 후대의 필사자들에 의해서, 특별히 그들의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신학적 요인에 의해서 오리지널 본문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기반을 더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러한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Myunghoon

신약의 구약 인용 1

현재 이 주제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흐르는 주제이므로 간략하게 정리하기 쉽지 않다. 최근 JSNT (38-1) 저널이 두 Guest Editors(David M. Allen과 Susan Docherty)를 초청하여 ‘신약의 구약 인용’이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마련했다. 저널을 보면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해당 호 목차: http://www.ntstory.com/목차-journal-for-the-study-of-the-new-testament-38-1-2015/

NT Studies 포스팅 링크

  1. Evans: http://www.ntstory.com/why-did-the-new-testament-writers-appeal-to-the-old-testament-by-craig-a-evans/
  2. Steyn: http://www.ntstory.com/observations-on-the-text-form-of-the-minor-prophets-quotations-in-romans-9-11-by-gert-j-steyn/
  3. Doherty: http://www.ntstory.com/do-you-understand-what-you-are-reading-acts-8-30-current-trends-and-future-perspectives-in-the-study-of-the-use-of-the-old-testament-in-the-new-by-susan-docherty/
  4. Lim: http://www.ntstory.com/qumran-scholarship-and-the-study-of-the-old-testament-in-the-new-testament-by-timothy-h-lim/
  5. Foster: http://www.ntstory.com/echoes-without-resonance-critiquing-certain-aspects-of-recent-scholarly-trends-in-the-study-of-the-jewish-scriptures-in-the-new-testament-by-paul-foster/
  6. Huizengi: http://www.ntstory.com/the-old-testament-in-the-new-intertextuality-and-allegory-by-leroy-a-huizenga/

이 논의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지만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 이 논의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학자들을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Dodd, C.H. 1952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e Sub-Struc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Lon- don: Nisbet).
  2. Lindars, Barnabas 1961 New Testament Apologetic (London: SCM Press).
  3. Juel, Donald 1988 Messianic Exegesis: Christ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Old Testament in Early Christianit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4. Longenecker, Richard N. 1975 Biblical Exegesis in the Apostolic Period (Grand Rapids, MI: Eerdmans).
  5. Hays, Richard B.1989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이 논의에 대한 개요는 다음을 참조하라.

  1. Porter, Stanley E. 1997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Testament: A Brief Comment on Method and Terminology’, in Craig A. Evans and James A. Sanders (eds.), Early Christian Interpretation of the Scriptures of Israel: Investigations and Proposal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79-96.
  2. Moyise, SteveThe Old Testament in the New: An Introduction (London: Continuum).2001
  3. Stamps, D.L. 2006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Testament as a Rhetorical Device: A Methodological Proposal’, in Stanley E. Porter (ed.), Hearing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9-37.
  4. Docherty, Susan E. 2015 ‘New Testament Scriptural Interpretation in its Early Jewish Context’, NovT 57: 1-19.

현재 논의가 되는 주제들을 세분화하면 다음과 같다.

  1. 문맥(Context): 핵심은 과연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의 문맥을 인용할 때 본래의 문맥과 의미를 그대로 유지했는가, 아니면 기존의 문맥 내에서의 의미에 머물지 않고 진화되고 발전되었는가의 여부다. 이에 대한 논의는 Steve Moyise의 Evoking Scripture: Seeing the Old Testament in the New (London: T&T Clark). 2008: 130-38 를 보라. 이 논의에서 G. K. Beale과 Steve Moyise는 대척점에 서 있다.
  2. 해석 테크닉(Interpretative Technique):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을 인용할 때 어떤 석의적/해석학적 테크닉을 사용했는가? 현재 이 분야의 핵심 학자로 부각되는 사람은 Susan Docherty이다. Docherty는 신약의 저자들이 유대인들의 해석학적 테크닉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학자이다. 최근 히브리서의 구약 인용 문제를 유대적 석의 방식에 초점을 맞춰 출판된 박사 논문이다. Docherty, Susan E. 2009 The Use of the Old Testament in Hebrews: A Case Study in Early Jewish Bible Interpretation (WUNT, 2/260; Tübingen: Mohr Siebeck). Docherty의 주장에 따르면, 이 분야가 앞으로 신약의 구약 인용 연구에서 아직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분야이며, 멘체스터 대학의 Alexander Samely에 의해 랍비적 해석 테크닉에 대한 방법론이 이미 충분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평가하면서 학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링크: http://www.ntstory.com/new-testament-scriptural-interpretation-in-its-early-jewish-context-by-susan-docherty/ 그러나 Docherty의 주장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전과 비교할 때 일반 유대 연구 학자들에 의해 방법론이 더 발전되고 정교해진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3. 텍스트 형식(Textual Form): 신약의 저자들이 어떤 본문을 사용하여 신약에 인용하고 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과거 MT냐 아니면 LXX냐라는 이분법적 논의에 머물렀다면, 앞으로의 논의는 훨씬 복잡해지는 양상을 띄고 있다. 쿰란 문서에 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고, LXX의 본문 비평 분야와 당대에 사용가능했던 다양한 문헌들에 대한 연구가 진전을 이루면서 학자들은 보다 정교하게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자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추적해 나가고 있다.
  4. 매크로 읽기와 마이크로 읽기 (Macro and Micro): 앞선 논의와 비슷한 맥락에서 과연 신약의 저자들이 구약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신들의 저작에 인용했는지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흔히 보다 좁은 문맥을 차용했는지, 아니면 해당 본문이 속해 있는 보다 넓은 네러티브를 염두에 두고 인용했는지의 여부를 연구하는 것이다.

Comments:

  • Intertextuality로 잘 알려진 신약의 구약 인용 연구는 최근에 쏟아지는 논문들의 수만으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 연구를 촉발시킨 학자는 Richard B. Hays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89])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헤이스가 제시한 방법론과 준거들이 이 연구에 있어서 일종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해왔지만 몇몇 학자들(e.g., Christopher Stanly, Stanley E. Porter)에 의해 문제 제기가 계속 이뤄져 왔다.
  • 특별히 이번 호에서는 Paul Foster에 의해 혹독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전의 비판들이 Hays 모델이 가진 상호본문성 판단 기준의 애매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Foster는 이러한 애매한 판단 준거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양산해 냈는가에 초점을 맞춰 이 방법론이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Foster는 (1) 유명한 학자들 내에서도 특정 텍스트에 대한 echo, allusion등의 판단 여부가 서로 다르며, (2) 최근에 출판된 박사 논문들을 살펴보고 전혀 개연성이 없는 주장들이 많다는 비평을 가한다. 특별히 Foster는 이것이 극단적인 형태의 독자반응비평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다. Foster의 비평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Intertextuality가 가진 art와 science 사이의 상호작용성을 쉽게 무시한다. 글을 보면 결과물에 대해 지나치게 과학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Foster와 같이 보다 역사 비평적인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의 공통된 비평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oster의 비판은 되새겨야 할 부분이 많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물을 통해 방법론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데, 현재의 결과가 파편화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그 방법론이 재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다. 지나치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 개연성 없는 intertextuality를 주장하는 논문들은 앞으로 더욱 혹독한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
  • Docherty의 논문도 주의깊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성경 저자들이 유대인들이었으며 유대랍비들이 사용했던 주석/해석 테크닉을 적용시키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연구가 사실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이미 Richard Longenecker가 제시한 미드라쉬적 해석으로 많은 연구가 이뤄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Dorcherty의 제시하는 방법론은 랍비 연구 전문들가들에 의해 마련된 최근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더욱 포용력있게 끌어안고 들어가고 있다. 더불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Docherty의 방법론이 가진 전제를 알 필요가 있다. 유대적 해석을 강조하자는 주장은 엄밀히 말해 일정 부분 기독론적 해석을 배제하자는 전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Docherty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NPP의 페러다임 전환은 기독교의 유대적 배경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향을 보였고,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유대적 해석에 대한 연구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말한다.
  •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앞으로의 intertextuality 연구는 LXX와 MT 두 텍스트의 신약 본문과의 연결점을 찾는 수준을 넘어, 보다 다양한 문헌들을 펼쳐 놓고 성경의 저자가 어떤 텍스트를 어떤 문맥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도로 차용했는지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분석적인 연구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포스팅은 저자-의도 중심의 해석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경향이며, 또 다른 흐름인 독자-반응 비평 학자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Myunghoon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남성성(Masculinity)

  •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성격에 대한 묘사’라는 주제로 열띤 논의가 진행 중이다.
  • 논의의 개요를 위해 다음을 참조하라. Skinner, Christopher W. “Introduction: Characters and Characterization in the Gospel of John: Reflections on the Status Questions”, in Christopher W. Skinner (ed.), Characters and Characterization in the Gospel of John (LNTS 461; London: Bloomsbury T&T Clark, 2013); Bennema, Cornelis. Encountering Jesu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4); idem. A Theory of Character in New Testament Narrativ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4); Hunt, Steven A., D. Francois Tolmie and Ruben Zimmermann (eds.) Character Studies in the Fourth Gospel (WUNT 314; Tübingen: Mohr Siebeck, 2013).
  • 예수님의 남성성에 대한 논의에서 핵심 학자는 Colleen Conway이며 저술서들은 다음과 같다. Conway, Colleen M. ‘Speaking through Ambiguity: Minor Characters in the Fourth Gospel’, BibInt 10 (2002): 324-41; idem, “‘Behold the Man!’ Masculine Christology and the Fourth Gospel,” in Stephen D. Moore and Janice Capel Anderson (eds.), New Testament Masculinities (SemSt 45; Atlanta: SBL, 2003): 163-80; idem, Behold the Man: Jesus and Greco-Roman Masculin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 Comments: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을 단순히 페미니스트적 해석 혹은 이데올로기적 해석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페미니스트적 아젠다가 이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논의 자체는 역사 비평적이며,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의 수사학적 문맥 속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관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성경의 저자들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투영하거나 혹은 저항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해당 아티클 링크: http://www.ntstory.com/gender-rhetoric-and-recognition-characterizing-jesus-and-redefining-masculinity-in-the-gospel-of-john-by-alicia-myers/
Myunghoon

신약학계 동향 노트를 만든 이유

앞으로 이 공간에 신약학계 동향을 간단한 노트 형식의 글로 [시험 삼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보통 소논문에는 최근 학계에 논의가 되고 있는 주요 이슈, 그리고 이 논의를 이끌어 가는 주요 학자들과 핵심 문헌들이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혼자 보고 흘려 보내기에는 아까운 자료들이 많습니다. 또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듣는 중에도 학계 동향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자주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가 ‘좋은 연구 주제’를 찾는 일일 것입니다. 주제를 찾은 이후에도 그 논의의 핵심 이슈, 학자, 문헌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곤 합니다. 이 간략한 노트가 연구자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연구 주제를 찾고, 해당 연구의 핵심 자료와 논의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목 그대로 간략한 노트 형식의 포스팅이므로 문체나 참고 문헌 스타일 등을 다듬는 일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부담없이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실효성이 없겠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 닫힐 수 있습니다. ^^

Myungh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