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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Detail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5.1 (2016)
Edited by Adele Reinhartz
ISSN: 0021-9231
EISSN: 1934-3876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Language: English

Abstract

Ancient rhetorical theory and the modern cognitive sciences have been almost entirely overlooked by scholars interested in the characterization of Nicodemus. In an effort to fill these twin lacunae, I approach the characterization of Nicodemus in John 3:1–15 from the vantage point of its rhetorical context, as well as of what we know of how humans make sense of characters. Unsurprisingly, new approaches shed new light on old questions surrounding the characterization of this (in)famous “leader of the Jews.” Viewed from this perspective, informed audience members likely would have viewed Nicodemus as a suspicious dissembling character in his first appearance in John’s Gospel, rather than as a “secret” or “imperfect” believer or seeker. This conclusion is supported by the cognition of characterization and the particular variety of figured speech enlisted by the Johannine Jesus in response to Nicodemus. While this article focuses particularly on John 3:1–15, there are compelling reasons to infer that audience members were meant to deduce that Nicodemus was ultimately convinced by Jesus’s rhetorically savvy response (cf. 7:50–51, 19:39).

Article Description

  • 본 소논문은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의 인물묘사를 헬라문학에 비추어 재조명 하고자 한다.
  • 저자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대부분의 경우 애매모호한(ambiguous) 인물로 이해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애매모호하다는 수식어는 니고데모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은 그들의 삶의 경험에 비추에 누군가를 부정적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길 원하지 애매모호한 평가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저자는 니고데모를 애매모호한 인물이 아닌 고대문학에서 흔히 사용되었던 ‘속이는 자'(dissembler)라는 범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속이는 자의 특징은 자신의 속 마음을 감추고 남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상대방을 높이거나 칭찬한다는 것이다.
  • 저자는 니고데모도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수님을 선생으로 부르며 다가왔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그 당시에 예수님과 회당의 갈등을 생각해 볼때, 세례요한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것 처럼(1:19)  니고데모도 비슷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대화에서 니고데모가 오해를 하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못해서가 아니라,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것이라는 것이다.
  • 하지만 니고데모가 보여준 속이는 자의 모습이 항상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9장에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니고데모이기 때문이다.
  • 결론적으로 니고데모가 3장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오기 전부터 예수님에게 호감을 가진 것이 아니라, 3장에서의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의 믿음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 및 번역
신숙구 [Ph.D., University of Cambridge,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