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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Details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8. 3 (2015)
Edited by Andreas J. Köstenberger
ISSN: 0060-8808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Language: English

Article Description

  • 본 아티클은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주장을 롬 11:15이 지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롬 11:15과 이 본문의 문맥을 살핀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교회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대체주의적(supersessionist) 이해를 보여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대체주의적 성경해석을 지지하지 않는 학자들 중에서도, 대럴 복 같은 학자처럼 대체주의를 “종말론적 관점에서의 대체주의”로 정의하여 이스라엘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지만, 일시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 롬 11:15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ἡ ἀποβολὴ αὐτῶν”(그들의 버림)을 주격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목적격으로 해석할 것인가이다(역주: 주격으로 해석하면, “그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림”으로 해석이 되고, 목적격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림”으로 해석이 된다. 개역개정에서는 목적격으로 해석되어 “그들을 버림”이라고 번역되었다). 저자는 전통적인 목적격적 해석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인 더글라스 무와 토마스 슈라이너가 이 해석을 지지하는 이유들을 소개하며, 이에 대해서 각각 반론을 반론을 제시한다.
  • 첫째, 무는 이 구절에서 “버림(rejection)”과 “받아들임(acceptance)”이 명백히 대조되어서 나타나는데, 이때 받아들임의 주어가 하나님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버림의 주어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받아들임”의 주어가 하나님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여기서 사용된 단어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로마서에서만 사용이 되는데, 14:3과 15:7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신자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사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본 논문의 저자는 무가 이 용례를 선택적으로만 제시한다고 반론하는데, 실제로 14:1과 15:7a에서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아닌, 한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 둘째, 슈라이너는 12절이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는데 반해, 15절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기때문에, 목적격적인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주변 문맥을 설명하면서, 11-15는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반론한다.
  • 셋째, 슈라이너는 바울이 주변 장들에서 일부 유대인들(예를 들면, 에서)을 버린 것을 부인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부분의 이스라엘을 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슈라이너와는 이 의미를 반대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이 나머지를 남겨두신 이유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 저자는 주격으로 해석해야 되는 이유를 추가적으로 세 가지를 더 드는데, 그것은 첫째, 본 단락의 시작부(11:1-2a)에서부터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주장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다는 점(11: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둘째, 5절에서의 남은 자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점, 셋째, 본 절과 평행구조를 가지는 12절에서 이스라엘이 주어로 나오는 점이다(11: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 그러므로 저자는 “그들의 버림”을 주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단어상, 문법상, 문맥상, 그리고 바울신학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도 더 옳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가 이스라엘을 쓸모없이 만들었느냐”는 본 논문의 제목에 나타난 질문에 대해서 실천적인 면에서는 “예”라고 대답해야 하겠지만, 이에 대한 성경의 대답, 적어도 바울의 대답은 “아니오”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약 및 번역
김형태 [Ph.D Student at Durham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