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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Details

Journal of Theological Interpretation 9.2 (2015)
Edited by Joel B. Green
ISSN: 1936-0843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Eisenbrauns
Language: English

Abstract

Bultmann’s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is instructive as a theological performance, which goes beyond redescription to theological explication. His reading of Paul illustrates his approach to theological interpretation, which is integral to the responsibility of theology to each new generation. Although we should now do theology with the NT in a very different form, Bultmann’s challenge remains: to go beyond mere repetition in order to render this text theologically fruitful, and communicable as good news, in our contemporary context.

Key Words
Bultmann, Paul,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Article Description

  • 이 소논문에서 저자는 불트만의 저작인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를 통해 그의 바울 읽기에 나타난 신학적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의 성격과 의도를 살피고 평가한다.
  • 저자는 최근 (특히 NPP 주창자들에 의해) 불트만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적어도 신학적해석학을 설명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불트만은 거장이었다고 말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저자는 불트만의 바울 읽기에 대한 많은 비판들은 사실 그의 목적과 의도를 오해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바울이 제시하는 주제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또 어떤 일관성을 가지는지 알기 위해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거나 재배열하는 것을 그들의 임무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말해 최대한 정확한 객관적 읽기를 통해 바울의 저작들을 재기술하거나, 그의 언어를 단순히 인용하거나, 또는 그가 제시한 주제들을 요약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 저자에 따르면, 불트만은 바울의 언어와 이야기를 단순히 반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석”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즉, 불트만에게 신약 신학의 과제는 바울이 전한 이야기의 반복이 아니라, 바로 “신학적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을 제시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불트만에게 “신학적해석학”이란 오늘날 학자들이 제시하는 두 단계의 과정, 즉 최대한 객관적인 역사 기술을 통해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신학적인 용어로 변경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불트만 자신은 이러한 단계적 과정이 사실 불가능하다고 보았는데 그 이유는 불트만에게 역사적 탐구의 과정조차 자기-개입의 과정, 즉 최고의 역사 기술은 소위 말하는 “객관성”이 아니라, 과거의 의미가 우리의 실존적 의미에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두고 씨름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저자는 불트만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게 된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 불트만에게 있어서 해석자의 역할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해는 바울의 언어에 대한 단순한 반복이나 재생산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2) 불트만은 역사적 주해와 신학적해석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신학적 책임 의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3) 불트만은 그의 신학적 해석이 방법론적으로 바울과 요한이 그들의 ‘시대’와 ‘장소’에서 시도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저자는 최근 불트만의 비판자들이 복음을 그것이 위치한 네러티브의 문맥에서 분리시켰다는 점을 들어 불트만을 비판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불트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불트만은 바울의 이스라엘과 구원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불트만이 이해한 바울의 의도와 목적은 “객관적” 역사 사실에 대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바울 자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이며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응답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 몇몇 신약학자들(특별히 새관점 학파)이 루터를 공격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불트만에 돌을 던지지만, 이것은 적절치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불트만은 단지 루터파로서가 아니라, 바울과 요한이라는 인물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불트만은 바울과 요한이 “진정한 의도”를 분별하는 작업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라고 보았으며, 그들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를 들음으로 자기-개입적인 방식, 다른 말로 믿음의 방식으로 독자들이 변혁되길 기대했다고 보았다.
  • 우리가 신약신학의 임무를 논할 때 불트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불트만의 해석학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반복과 인용을 넘어서 우리 세대를 위한 책임감의 행위로서의 ‘신학적해석’을 하도록 도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만약 바울신학자들이 신학적해석 없이 단지 바울의 언어를 반복하는 것에 그친다면, 우리는 곧 성경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신학의 주제로 성경을 엮어내는데 실패하게 된다면, 우리는 결국 성경연구를 신학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성경을 그저 과거에 존재했던 하나의 의미없는 텍스트로 만드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리가 불트만에게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는 적어도 신약 성경을 그가 살았던 시대의 맥락 속에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요약 및 번역
조명훈 [Ph.D Student at McMaster Divinity College,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