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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Details

Biblica 96.4 (2015)
Edited by Biblica
ISSN 0006-0887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Th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Language: English, German, Italian, and French

Abstract

The question of Paul’s prophet-like apostolate has gained renewed interest due to the “Radical New Perspective”, claiming that Paul remained fully within the confines of his Jewish identity. His prophetic call to become an apostle (Galatians 1) serves to substantiate that. The only new thing is that Paul came to a new understanding of the time, i.e. the time for the ingathering of the Gentiles had arrived (Pamela Eisenbaum). The present article argues that the prophetic model is not sufficient to explain how the Damascus event influenced the apostle’s theology and mission. This event initiated a process of “slow conversion” as well.

Article Description

  • 본 소눈문은 바울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은 구약의 ‘선자자’로서의 자기인식에서 왔다는 주장에 대해 논박한다.
  • 저자는 우선 K. O. Sandes의 저작 Paul-One of the Prophets? A Contribution to the Apostle’s Self-Understanding (1991)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 바울이 이해한 사도권은 선지자적 배경을 지닌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울의 사역을 이해하는데 있어 선지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인식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 저자에 따르면, 지난 수십년에 걸쳐 바울학계는 바울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연구의 방향이 바뀌었는데, 이는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갈라졌다는 주장(“the parting of the ways”)에서 바울은 결코 유대교를 떠난 적이 없다는 주장(“the ways that never parted”)으로 점차 이어지면서 초기기독교 운동을 유대주의의 변이로 보는 학자들까지 등장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학자는 Pamela Eisenbaum인데, 그녀는 그리스도가 오직 이방인들에게만 필요하며, 예수가 구원을 베푸실 때 그 구원은 오직 이방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 속에서 Eisenbaum의 중요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개종한 것(converted)이 아니라 부름을 받았다는 것(called)이며, 바울은 그의 선교사역을 수행함에 있어 자신을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 여기서 핵심은 바울이 과연 자신을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인식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구약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이해했는지의 여부이다. 따라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바울의 선지자적 사도의 신분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분리되는 문제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주는가?”
  • 저자는 우선 다메섹 사건을 이 질문에 대한 해결의 단서로 삼는다. 저자는 다메섹 사건이 바울에게 있어서 일종의 패러다임을 형성한 사건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갈 1:15-16a에서 이 사건에 대한 자서전적 고백을 할 때 렘 1:5과 사 49:1 등을 암시하는 소명의 표현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바울이 전달하라고 위임받은 메시지를 받는 동사는 “유앙겔리조마이”라고 말하면서, 이는 신성한 권위가 그의 ‘사도권’이 아닌 그가 전하는 ‘복음’에 적용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즉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이 본문에서 나란히 언급되긴하지만, 전자는 후자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강조점은 ‘바울의 자기이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하도록 부여받은 ‘복음’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전하는 것은, 그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이며 이 선지자적 임무는 본질상 부활하신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 사명이므로 이는 바울의 선지자로서의 자기인식과 구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 다음으로 저자는 고전 9:16을 간략히 살펴본다. 여기서 바울은 복음의 선포가 자랑할 것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임무’ 혹은 ‘의무’로 부여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그가 이 의무를 실행하지 못했을 때 화를 당한다는 고백은 구약의 선지자들에게서 가장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고전 9장 전체 문맥을 볼 때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선지자와 같은 사도직”(prophet-like apostolate)에 대한 개념은 바울의 말하는 사역의 특정한 측면만을 설명하는 것일 뿐 전체를 포괄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와 같은 사도직”(Christ-like apostolate)에 종속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 마지막으로 저자는 바울의 사도권과 선지자의 정체성이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본문 어디에서도 바울이 자기 자신을 선지자로 부른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바울은 선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전혀 새로운 정체성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때 진정한 소식이란 ‘복음’이지 ‘바울 자신’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바울의 부르심에 있어서 선택, 파송, 부여된 권위가 모두 구약의 선지자와 근본적인 유사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바울 자신은 선지자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켰는데, 그 이유는 ‘성취로서의 복음’을 ‘이 약속을 전한 선지자’와 구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선지자’가 아닌 ‘사도’로 불렀으며, 사도권이 지닌 그리스도 중심성은 그 권위와 내용에 있어서 선지자의 그것과 철저히 구분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 결국 저자는 다메섹 사건을 전체의 문맥을 고려할 때, 선지자적 정의와 용어가 등장하여 과거와의 ‘연속성’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된 ‘단절성’도 강조하고 있으며, 이와같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바울 사도직의 선지자적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극단적새관점”(the Radical New Perspective)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한다고 주장한다.

요약 및 번역
조명훈 [Ph.D Student at McMaster Divinity College,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