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LINK

Article Details

Source: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2015, 37(3)
Subjects: Biblical Studies
Publication Year : 2015
DOI: 10.1177/0142064X14566371

Abstract

This is a response to criticisms raised by Paula Fredriksen and F. Gerald Downing of my recent JSNT article, ‘Jesus in Jerusalem: Armed and Not Dangerous’. After noting cases where Fredriksen and Downing misrepresent my arguments, I respond to Fredriksen’s disagreement with my interpretation of μάχαιρα as ‘sword’ and to the objections raised by both respondents about the lack of legal evidence for the prohibition of carrying arms in a city. I also address a number of historical and methodological issues raised by both responses.

Keywords
Jerusalem, Jesus, Passover, rebel, swords, temple

Article Description

  • 저자는 자신의 아티클 ‘Jesus in Jerusalem: Armed and Not Dangerous’에 대한 Downing 과 Fredriksen의 비판을 재 반박하기 위해 이 글을 기록했다.
  • 저자는 먼저 그들이 자신의 논지를 잘못 이해했음을 피력한다. Downing은 저자가 마치 로마의 법이 오랜 세월 동안 세계적으로 동일했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며, 마찬가지로 Fredriksen 또한 저자가 로마의 권력이 모든 영토에 미쳤다는 가정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과도한 일반화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예수님이 체포될 당시 로마가 예루살렘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기에, 예루살렘에서 로마의 법이 효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지나친 억측이 아니라고 말한다.
  • 둘째로, 저자는 Fredriksen이 “칼”(μάχαιρα)이 무기가 아닌 유월절 희생제사를 위한 칼로 보았지만, 헬라 성경 및 유대 문헌에 나오는 다양한 칼의 의미를 살펴보면, 칼은 충분히 생명을 앗아가는 무기로 사용된 예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칼이 단지 유월절 희생제사를 위한 것이었다면,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뒤에까지, 또 더구나 성밖에 있는 동산에까지 이 칼을 차고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 셋째로, 저자는 로마법에 대한 Downing과 Fredriksen의 비판이 주로 인용된 자료가 제한적이고 그 연대가 늦다는 점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로마제국의 사법적 제재가 법조문 보다는 이어져 내려오던 관습과 통치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구체적인 법조항의 존재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추가적인 인용문을 제시한다.
  • 넷째로, 저자는 두 비평가들이 지적한 잘못된 병행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저자는 로마가 추종자들을 제외한 리더만 처벌한 예로서 세례요한의 처형을 사용했는데, Fredriksen은 세례요한은 예수님과는 달리 혼자 체포되었고 또 밀폐된 공간에서 처형되었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로마의 정치적 성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둘의 죽음의 세부사항이 반드시 같아야 할 필요는 없으며, 비록 다른 점이 있다 해도 자신의 논증을 뒷받침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마찬가지로, Downing또한 종말적 전쟁을 기대했던 쿰란 공동체와 예수 운동을 비교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았는데, 저자는 자신은 예수운동이 쿰란공동체와 똑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며, 단지 어떤 유대인들에게는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종말적인 전쟁을 기대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반박한다.
  • 마지막으로, Downing은 만일 예수님이 저자의 주장처럼 종말적 전쟁의 지휘관으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비폭력적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저자는 예수님의 비폭력적 가르침은 일종의 전략적이고 한시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현대인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비폭력적 원리는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성경저자는 인간의 편에서 사용되는 폭력에는 부정적이지만,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그의 대리자를 통해 사용되는 폭력에까지 부정적이지는 않다.
  • 결론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글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이의제기는 대부분 자신의 논증에 대한 부분적인, 또는 잘못된 이해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기본적인 입장을 무너뜨릴만한 반박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요약 및 번역
장규성 [Ph.D Student at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U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