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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초록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최근까지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로마서 11장의 감람나무 유비(이 글에서 말하는 바를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an expanded-covenant model of salvation history])의 개념을 갈라디아서에서 과연 발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논의의 이면에는 Heikki Raisanen이 주장하는 것처럼, 바울에게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닌 신학이 없다는 주장과, 이에 반하여 Bockmuehl, N. T. Wright, Dunn이 주장하는 것처럼, 바울 서신에서 나타나는 신학들에는 일관성과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입장의 대립이 존재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통시적 방법론’을 따라 서신의 특수한 역사적 정황과 필요성에 따라서 바울의 확장된 구원 모델이 개별 서신들에 나타나고 있는지의 여부를 살피고 있습니다(특별히 갈라디아서).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확장된 구원 모델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13가지로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싸이트에서는 초록 부분과 13가지 역사적 재구성 부분만 번역하도록 하겠습니다.

 

Ⅰ. Abstract

In Paul’s Galatian letter, are Gentile Jesus-followers depicted as participating in the ongoing salvation history of the Jewish people? Does the model of ingrafting that Paul employs in his olive tree analogy of Rom 11 undergird Paul’s theological discourse in Galatians? This essay (1) overviews the contemporary debate, (2) outlines relevant data from 1 Thessalonians to Romans as a backdrop against which to consider the Galatian letter, and (3) investigates key passages in Paul’s letter to Galatian Jesus-followers in a nuanced proposal concerning the salvation-historical dimensions of that letter. Finally, (4) I propose a 13-point reconstruction concerning fluctuations in Paul’s salvation-historical discourse between the years 50 (1 Thessalonians) and 57 (Romans).

바울의 갈라디아 서신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대인들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로마서 11장의 감람나무 유비에서 사용되고 있는 접붙임의 모델은, 갈라디아서에서 전개되는 바울의 신학적 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가? 이 에세이에서는 (1)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논쟁들을 간략히 다루고, (2) 데살로니가전서부터 로마서까지 서신들이 기록되는 동안 갈라디아서에서 고려되고 있는 논의들에 반하는 기본 배경이 되는 관련 자료들을 개괄적으로 다루고(역자주: 여기서 저자는 갈라디아서에서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an expanded-covenant model of salvation history]에 대한 그 어떤 가능성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3) 갈라디아서의 구원 역사적 차원과 관련된 뉘앙스를 지닌 핵심 구절들을 조사하고, 마지막으로, (4) AD 50년부터 57년 사이의 바울의 구원 역사적 논의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점들과 관련하여, 13가지로 나누어 (상황을) 재구성할 것이다.

 

Ⅱ. A Reconstruction of Paul's Salvation-Historical Discourse (바울의 구원-역사적 담론 재구성)

  1.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를 주후 50년 봄에 고린도에서 기록하였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 (an expanded-covenant model of salvation history)과 이 모델을 바탕으로 신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물론 고린도교회의 그리스도인들조차 아직 이 모델을 접하지 못했다.
  2. 바울은 아마도 50년 가을, 고린도에 있었을 때,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을 것이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구원 역사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율법의 준수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반대자들의 주장을 배격한다. 특별히 이 주장들을 반대할 때, 바울은 로마서 11장에 명백히 나타나는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을 아직 적용하지 않았다. 
  3. 바울은 주후 51년 늦은 여름에, 바울은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자신의 갈라디아 서신이 입수된 후 이에 대한 대비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과 재접촉하기 위해서 고린도를 떠났다(행 18:18-22). 데살로니가전서 2장 14-16에 나타나는 그의 언급도 아마 바울의 반대파들에 의해 서신이 입수된 후 바울에 대항하여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4. 주후 51년 후반 예루살렘과 안디옥에서, 바울은 이전에 유대인과 이방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강하게 논쟁을 벌였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된다(갈 2:1-14; 행 15). 이 만남의 결과로 바울은 그의 신학적인 담화에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을 통합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혹은 필요성)을 보기 시작한다. 
  5. 주후 52년에 에베소를 여행하면서 바울은 남쪽 갈라디아를 지나게 되는데(행 18:23) 그 곳은 그가 몇년 전에 설립한 기독교 공동체와 다시 접촉한 곳이다. 1) 만약 이들이 바울이 2년 전 격한 어조로 썼던 바로 그 갈라디아 서신의 수신자들이라면(즉, 남갈라디아설이 맞다면), 바울은 지금 그들에게 굉장히 다듬어지고 어떤 의미에서 바울화된 버전의 확장된 언약 모델을 서술하는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들이 율법의 행함이 아닌, 단지 그리스도의 신실성 안에 있는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구원 역사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 (만약 북갈라디아설이 맞다면) 이 남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썼던 편지의 수신자와 동일인들이 아닐 것이다. 바울의 갈라디아서신이 필사되어 남쪽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서신이 충분히 전해지고 읽혀졌다고 가정한다면, 바울은 조심스럽게 바울이 새롭게 채택한 확장된 언약 모델의 아웃라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6. 주후 52년에 에베소에 다시 올아와서, 바울은 계속적으로 그가 새롭게 받아들인 확장된 언약 개념의 의미를 숙고했다. 53년까지,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롬 15:26) 위한 연보모금을 시작할 계획을 생각했다. 물론 이 연보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중요한 의미 가운데 하나는 바울이 후에 로마서 15장 27절에 말하는 것처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가졌기 때문에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긴다는 인식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 바울은 확장된 언약 모델을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를 향한 사역으로 확장시키는 도구로서 이를 그의 신학적 담론에 흡수한다.
  7. 53년에, 바울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조언했던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보냈다(이 편지는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고린도전서 5장 9절에 언급된 편지이다). 바로 이 편지에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예루살렘의 기독교인들을 위한 연보에 대해 처음으로 알렸을 수도 있다. 
  8. 54년에 바울은 우리가 고린도전서라고 부르는 또 다른 서신을 고린도교회에 보냈다. 10장 1-13절에 바울은 다시 한번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것은 불과 1년이라는 시간 안에 이루어진 두 번째 시도이다. 
  9. 바울이 고린도에 편지를 보낸 후에 디모데가 충격적인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다. 몇몇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최근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바울에 대항하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들의 바울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연보에 대한 바울의 동기에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바울이 최근에 형성한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이 연보로 위장되어 바울의 사리사욕을 채운다고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 
  10. 바울은 고린도로 달려가 이 상황을 설명했지만, 정면공격을 통해서 해결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서 고린도에 다시한번 편지를 쓰기로 작정했다(고후 10-13, 54년 후반에 쓰여진 ‘고통의 서신’). 바울이 이 편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들을 찾았지만, 그 중에 하나는 연보에 관한 그의 도덕적 순결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고후 11:7-9; 12:12-18). 비록 바울이 처음에는 그의 연보에 대해 확장된 언약 모델의 문맥 안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했겠지만, 여기서 바울은 이 모델에 대해 침묵하는데, 그 이유는 이 모델이 바울의 신학과 그의 사도적 신뢰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1. 하지만 이 “고통의 서신”은 그 목적을 이루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고린도교인들이 그 편지로 말미암아 다시한번 바울을 신뢰하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주후 55년에 고린도교회와의 화해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한 또 다른 편지(고린도후서 1-9장으로 알려진)를 그들에게 보낸다(아마도 데살로니가에서). 이 편지에서 바울은 정확히 두 가지 이슈를 논한다: (1) 구원역사에 대한 이슈(이것은 바울이 그의 고린도후서 3장에 제시한 사도적 사역과 관련한 논의), 그리고 (2) 연보 문제(고린도후서 8-9장). 비록 이 편지에 고린도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연보에 참여해달라고 권고하는 두 장의 권면이 있지만, ‘확장된 언약적 구원 역사 모델’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미 확장된 언약 모델을 고린도교인들에게 교육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후서 3장에서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관계를 말할 때에도 그는 이 확장된 언약 모델에 대한 어떤 접근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와 고린도 교인들 사이의 불화를 가져왔던 이 구원 역사 모델을 사용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는 현명하지 않는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12. 주후 57년 고린도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바울은 로마서 11장 17-24절의 감람나무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다시 한번 그의 연보에 대한 노력과 확장된 언약 모델을 연결시킨다(15:27).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로마로 보내는 서신이나 혹은 그 복사본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과 그들과의 관계는 이미 정상화된 이후였고, 당시 바울도 그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이 편지를 읽을 때 바울의 신학에 대한 고린도인들의 오해는 더 이상 없었을 것이다. 
  13. 만약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62년경에 풀려났다면, 그리고 만약 바울이 자신이 바라던 서쪽 스페인을 향한 사역이 이뤄졌다면(롬 15:23-24), 바울은 그 어디에도 유대인들이 없는 지역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아마도 이 상황 속에서 그는 다시 한번 그의 구원 역사의 확장된 언약 모델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Pauline

Salvation History in Galatians and the Making of a Pauline Discourse

Author: Bruce Longenecker
Source: Journal for the Study of Paul and his Letters, Volume 2, Issue 2, pages 65-87
Subjects: Biblical Studies
Publication Year : 2012
ISSN : 2159-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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