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LINK

Article Detail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38.2 (2015)
Edited by Catrin H Williams

ISSN: 0142064X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SAGE Publication
Language: English

Abstract

There has been recent debate about the background and origins for Paul’s use of the word ἐκκλησία: is it to be understood primarily against an LXX or Greco-Roman background? This article is an attempt to present further evidence that there is, indeed, a clear Septuagint background for Paul’s use, especially his multiple uses of ‘church [assembly] of God’ (ἐκκλησία τοῦ θεοῦ ). Significant parallels occur in Philo’s writings, which provide a precedent for Paul’s use. This does not mean that there is no Greco-Roman influence on Paul’s use of the phrase, although the limits of the study allow only a relatively brief exploration of this possible background.

Keywords:
Septuagint, assembly/church (ἐκκλησία ), Greco-Roman background, Jewish background/Philo

Article Description

  • 본 아티클의 저자인 G. K. Beale은 바울이 교회(에클레시아), 특히 “하나님의 교회(ἐκκλησία τοῦ θεοῦ)”라는 문구를 사용할 때, 여기에는 분명히 구약(칠십인역)의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에 대한 발전된 증거를 제시한다.
  • 최근에도 바울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이것이 칠십인역에 의존한 것인지, 아니면 그레코-로만적 배경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이 있었다. Trebilco는 바울의 에클레시아가 이스라엘이 회중형태로 모였을 때를 지칭할 때 사용된 칠십인역의 배경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Trebilco 2011: 440-60). 이에 대응하여, Kooten은 이것이 칠십인역의 배경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공적으로 군집된 회중을 가리키는 그레코-로만적 배경에 의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Kooten 2012: 522-48).
  • 저자는 에클레시아의 칠십인역 배경을 입증하기 위해서, 먼저 통계적인 사실을 언급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으로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모두 60번 사용하는데, 그중에서 12번은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고 말하고 있다.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 단어 카할(קהל)의 번역으로서 에클레시아가 모두 73번 사용되는데, 이중 7번은 주님의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 κύριος)로 1번은 바울의 사용과 같이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로 사용된다(느 13:1).
  • 저자는 여기서 특히 바울의 용례와 같은 느 13:1에 주목하고, 바울이 이 구절을 배경으로 삼아 자신의 서신에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바울의 단어사용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유일하게 에클레시아가 모세의 책(신 23:4)을 인용하면서 사용되었고, 예배 가운데 토라를 읽고 가르치는 장소로서의 바울의 에클레시아와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 더 나아가 저자는 새로운 증거로서, 바울 서신이 쓰여지기 직전에 필로가 자신의 책에서 느 13:1과 마찬가지로 신명기 23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음을 제시한다(Leg 3:8). 또한 저자는 필로가 다른 곳에서 “주님의 에클레시아”와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라는 문구를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도 밝히면서(Ebr. 213; Conf. 144; Post. 177), 필로에게 하나님과 주님이라는 단어는 교환가능한 단어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칠십인역에서 보통 “주님의 에클레시아”로 표현된 문구가, 바울에게 “하나님의 에클레시아”로 표현되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 또한 저자는 에클레시아가 그레코-로만의 정치적인 모임을 뜻하는 배경으로부터 왔다는Kooten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그의 주장의 약점을 지적한다. Kooten의 주된 논지는, 사도행전 19장에 여러 번 나오는 에클레시아가(32, 39, 40-41절) 도시의 의회를 뜻하거나, 정치적인 모임을 뜻하는 용례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하며, 행 20:28에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도 이런 정치적인 모임과의 병치를 뜻하려는 의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cf. 빌 3:20). Kooten이 말하는 그레코-로만의 정치적 모임과 교회가 유사한 부분은 (1) 둘다 어떤 지침(instruction)이 알려지는 장소라는 점, (2) 분쟁과 분당을 포함하는 곳이라는 점, (3) 열광보다는 이성을 강조하는 장소라는 점, (4) 모든 대중에게 공개될 수 있는 장소라는 점 등이다. 그러나 Beale은, (1)에 대해서는 교회는 정치 모임과는 달리 간헐적이 아니라 꾸준하게 가르침이 계속되는 장소라는 점, (2)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주장이라는 점, (3)에 대해서는 그레코-로만의 정치적 모임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반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고대교회에게 어떤 모델로서 규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 (4)에 대해서는 그레고-로만의 정치적 모임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범위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서, 둘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킨다.
  • 그러므로, 저자는 에클레시아에 대한 칠십인역의 배경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음에 반하여, 그레코-로만적 배경은 암묵적으로만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본 연구결과로만 봐서는 칠십인역의 배경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

요약 및 번역
김형태 [Ph.D Student at Durham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