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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Details

New Testament Studies 62.3 (2015)
Edited by Francis Watson
DOI: 10.1017/S0028688514000332
Publication Type: Journal
Impri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Language: English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meaning of ἐφ’ ἑλπίδι in Rom 8.20c. This phrase has been variously understood as denoting a hope exercised by the one who subjected creation or a hope inhering in creation despite its subjection. After surveying and evaluating the standard proposals, I argue for an alternative manner of punctuating vv. 19–21 that makes it possible to preserve the most common meaning of ἐπί with the dative, while also taking creation itself as the agent that acts ἐφ’ ἑλπίδι. This proposal obviates a number of difficulties with conventional readings, and highlights the parallels between Paul’s statements about the hope of creation in vv. 19–21and the hope of believers in vv. 24 –5.

Keywords: Paul, Romans 8.18–25, creation, hope

Article Description

  • 본 논문은 롬 8:20c에 있는 “ἐφ’ ἑλπίδι” (in hope: 개역개정에서는 21절에서 ‘바라는 것은’이라고 번역됨. 롬 8:20-21a 개역개정 번역: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의 의미에 대해서 탐구한다.
  • 이를 위해 먼저 저자는 롬 8:18-20b의 주변 문맥을 살펴보는데,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 단락을 피조물들이,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와 사망에게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묵시론적인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피조물과 사람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고(피조물 안에 사람까지 포함시키는 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8:20b(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에서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직접적인 이유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결정으로 보고, 인간의 죄책은 이에 대한 간접적인 이유로 본다 (τὸν ὑποτάξαντα 를 아담으로 해석하고, οὐκ ἑκοῦσα를 피조물 자신의 잘못으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해서).
  • 저자는 ἐφ’ ἑλπίδι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한다: (1) “소망”은 피조물을 굴복시키는 하나님의 행위에 깔려 있는 것이다 (전치사 ἐπί를 “on the basis of”로 해석), (2) “소망”은 피조물을 굴복시킴으로써, 피조물 속에 소망이 생성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전치사 ἐπί를 “for the purpose of”로 해석), (3) “소망”은 피조물의 굴복에도 불구하고, 피조물 안에 원래부터 내재된 것이다 (전치사 ἐπί가 대격과 함께 쓰일 때, 그 명사의 조건이나 상태를 나타낼 수 있음에 착안해서).
  • 저자는 1번 해석은, 문법적으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석이지만 하나님이 소망에 대한 주어가 되는 용례는 신약성경에서 발견할 수가 없고, 또 신학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한다. 또, 소망을 가져오기 위해, 피조물을 허무한 데 굴복시켰다는 2번 해석과 피조물 자체가 소망을 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무한 데 굴복했다는 3번 해석을 바울의 논지로 보기에는 부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
  •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ἐφ’ ἑλπίδι를 문법적으로는 (1)번 해석과 같이 “on the basis of”로 해석하지만, 이것이 위의 해석처럼 ὑπετάγη (굴복하다)나 τὸν ὑποτάξαντα(굴복하게 하시는 이)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19절의 동사 ἀπεκδέχεται (고대하고 있다)를 수식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 이유는, 바울은 이 경우와 같이 수식하는 말 앞에 다른 어구들을 삽입시켜서 쓰는 경우가 빈번하고, 이렇게 해석할 때 19-22절과 23-25에 나타나는 피조물과 인간 사이의 평행이 보다 뚜렷해 지기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렇게 해석하면, 이 두 단락에서 “탄식”과 “기다림”과 “소망”이라는 이미지가 평행하게 나타나게 된다.
  • 결론적으로 저자는 본 논문의 제목처럼 8:20c의 소망이 아담의 죄책으로 인해 사망과 죄 아래에서 인간과 함께 탄식하고 있는 피조물자체의 소망이며,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죄와 사망에게 승리하고, 자신들을 자유롭게 해줄 그 소망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요약 및 번역
김형태 [Ph.D Student at Durham University]